러시아가 촉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키예프 함락은 고사하고, 장기화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며, 앞으로 국제질서는 어떻게 개편될 지, 러시아와 인접한 유럽은 또 어떤 대응방식을 취할지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에 관해 다뤄볼까 합니다.
1. 러시아, 유럽연합간 에너지 협력의 중심, 바로 천연가스
지난 유럽연합(UN) 포스팅에서 다뤘듯이, 유럽국가들과 러시아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갈등의 골이 깊어져왔습니다. 양세력간의 이러한 갈등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양측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원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양측은 상호간의 발전을 위해선 서로의 존재가 필수적인, 그야말로 뗄레야 뗄수없는 밀접한 의존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요. 그 연유에 관해서는 양세력의 역사를 조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차세계대전 종료후 냉전에 접어든 시기, 소련은 유럽에게있어 여전히 위협적인 세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47년 마셜플랜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의 재건을 지원하면서 유럽내 영향력을 키웠고, 이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1949년 소련 견제를 주목적으로 서유럽 12개국이 참여한 군사동맹 나토(NATO)를 출범시킵니다.
소련에게 나토라는 군사동맹은 상당히 불쾌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시장은 자국의 풍부한 석유가스자원의 유력한 수출시장이었고, 이는 마찬가지로 유럽에게서도 소련이 가진 자원은 매우 매력적인 요소임이 분명했죠. 결국 소련은 유럽산 철강파이프를 수입해 유럽까지 가스관을 연결하겠다는 의사를 먼저 전달했고, 이는 유럽에게 역내 철강파이프를 수출할 수 있는 기회이자, 동시에 소련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값싸게 들여올 수 있다는 판단으로 양측간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소련을 견제하고자 나토까지 주도적으로 출범시켰던 미국 입장에서는 이같은 서방세력과 소련과의 협력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나 마셜플랜으로 국가재건에 성공한 유럽국가들은 역내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줄이고자 유럽통합을 추진해왔고, 유럽내 영향력이 줄어든 미국은 유럽의 소련 파이프 수출을 강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은 1962년 나토 이사회를 통해 소련 파이프 중단을 '금지'가 아닌 '권고'하는 차원에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죠.
결국 영국·이탈리아·서독을 중심으로한 소련과의 파이프 계약이 합의에 이르렀고, 유럽 3개국이 총대를 매자, 이같은 소련과의 파이프계약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70~80년대까지 유럽과 소련을 잇는 자원 파이프라인 구축이 유럽전역으로 촘촘히 확대되면서 오늘날 유럽과 러시아의 에너지자원 의존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양세력은 서로가 위협이 되는 존재임과 동시에 자국 발전을 위해서는 상호협력이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여기서 러시아는 한발 더 나아가 유럽연합과의 에너지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향후 정치적 갈등이 빚어질 시, 천연가스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죠.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비중 40%
러시아 대유럽 수출품목중 에너지자원비중 25%
2. 높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에 따른 위험부담
그러나 이같은 유럽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러시아산 자원 의존도는 민감한 국제사안이나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공급을 중단할 경우,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2006년과 2009년 두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는데요. 2006년 사태야 비교적 빠르게 갈등이 봉합되었지만, 2009년에는 가스 공급이 상당기간 중단되며 이에 따른 연쇄적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두차례 가스 공급이 모두 절기상 겨울이었던 것에 따라 가스 수요가 많았던 것도 이같은 극심한 피해의 한 요인으로 지적됐죠.
러시아산 에너지자원 의존도가 확대됨에 따라, 이에 따른 위험도 가중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였고, 실제로 가스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높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최근 환경관련 이슈로 인해 에너지 자원으로서 천연가스 수요가 꾸준히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고, 또 다른 대안인 LNG 혹은 CNG 제품의 경우 기타 가공과정을 거쳐 해상을 통해서만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비해 단가가 매우 높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3.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유럽연합의 대응방안
천연가스 수입에 있어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연합은 앞선 두 차례의 러시아발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위기인식으로 공동 대응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가스를 EU 회원국들간 거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마련해둔 상황입니다.
이같은 조치는 러시아가 정치적 이유로 각국별 다른 수출단가를 적용하고 있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부분이긴하나, 유럽연합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 추후 유럽연합이 러시아가 아닌 다른 시장으로 에너지 공급국을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엔 한계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반쪽자리 대안에 불과합니다.
특히 유럽연합내에서도 러시아와 원만한 사이를 유지중이던 독일은 향후 러시아의 내부적 갈등속에서도 안정적인 가스 공급을 보장받기 위해 2012년 러시아와 독일을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1225km 길이 초대형 가스관 사업인 '노르트스트림2'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양국간 직결된 파이프라인 구축으로 인해 비교적 국력이 약하거나 러시아와 관계가 좋지 않은 국가들은 에너지안보 공백 발생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이 러시아 제재수단으로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사업 중단을 꺼내든건 조금 의외인데요. 그나마 러시아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독일 마저 이렇게 등을 돌린 것을 보면, 러시아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당히 많은 댓가를 치뤄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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