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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밤에 우크라이나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연합(EU)  가입 신청서에 서명함과 함께 이를 긴급 승인해줄 것을 유럽연합 지도부에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유럽연합과 유엔(UN)같은 다자간 협력기구는 차차 다룰 예정이었는데, EU가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으니, 포스팅 순서를 조정해 유럽연합의 탄생배경 및 역할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합니다.

 

1. 유럽연합의 탄생과정

 

 현대에 이르러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역이 모두 극심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또다시 시작된 냉전 국면속 유럽 국가들은 상호간 전방위적 협력을 통해 외세에 맞서야 한다는데 어느정도 공감을 이룹니다. 

윈스턴 처칠

 특히 이 과정에서 아직도 영상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1946년 윈스턴 처칠의 '유럽 합중국 연설'은 당시 유럽국가들의 통합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유럽 각국들은 통합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했지만서도, 유럽 전역이 황폐화돼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통합도 안되는 마당에 구체적인 통합방안에 대해서는 감히 그 누구도 명확한 구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죠.

조지 마셜

 이때 미국이 혜성같이 서유럽 국가들을 돕기위해 두발벗고 나서게 됩니다. 그 이름하야 유럽부흥계획,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그 마셜플랜이죠. 마셜플랜은 당시 이를 주장한 미국의 국무장관 조지 마셜의 이름과 계획(Plan)을 붙인 단어입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견제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방안으로 서유럽에 대한 국가재건에 전방위적인 지원에 나서게 됩니다. 당시 전례없던 호황을 누리던 미국은 강력한 자금을 바탕으로 OECD에 가입한 유럽국가들을 대상으로 1947년부터 1951년까지 4년간, 무려 130억달러 규모 경제 및 기술지원에 나서 서유럽 국가들의 재건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마셜플랜의 수혜로 국가 재건에 성공한 서유럽 국가들은 빠른 경제회복속도를 기록하며 세계대전 이전의 경제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1950년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었던 쉬망은 당시 전략자원이었던 석탄 및 철강 공동체 창설을 제안했고, 이듬해인 1951년 쉬망 선언을 기초로 석탄이 풍부했던 독일과 철강이 풍부했던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가 함께 참여한  유럽 최초의 경제협력기구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창설됩니다. 여담이지만, 쉬망 당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경제협력보다는 유럽의 꼴통이었던 독일을 감시하고자 전략물자를 공동 관리하는 기구 창설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알려져있기도 하죠.

 

 한편 ECSC 창설 이후 6개 회원국은 경제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통합기구 창설을 고심했고, 1958년 마침내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을 잇따라 창설하게 됩니다. 이중 EEC는 회원국간 관세동맹을 발전시켰고, 유라톰은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핵에너지 통제에 관한 합의를 이뤘습니다.

 

 성공적일것만 같던 유럽 대통합은 그동안 통합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영국의 기행으로 큰 위기를 맞습니다. 영국은 1960년 EEC 비회원국들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창설하게 됩니다. 결국 유럽은 EEC 6개국, EFTA 7개국으로 나뉘어지게 되는데요. 

 

 영국은 이로부터 불과 1년이 갓 지난 시점에 EEC 가입을 일방적으로 유럽국가들에 선언하게 됩니다.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EFTA 6개국은 당초 영국에 감언이설에 속아 덜컥 가입했는데, 이제와서 영국이 빤스런해버리니 미치고 팔짝뛸 노릇이었죠.

영국 빤스런

 그러나 영국은 프랑스의 격렬한 반대로 호기롭게 도전했던 EEC 1차가입이 무산됐고, 1963년 2차가입을 시도했지만 이조차도 프랑스의 반대로 무산됩니다. 프랑스의 이같은 영국 EEC 가입 반대는 당시 친미성향이 짙던 영국이 EEC에 가입할 경우, 미국의 대유럽 영향력이 커지고, 이에 따른 간섭이 심화될 것이란 계산에 따른 것이었죠.

샤를 드골

 하지만 하나된 유럽을 꿈꾸던 유럽 각국들의 바람은 점차 현실화돼 1967년 7월 마침내 ECSC, EEC, EURATOM 3개 기구를 모두 통합한 유럽 공동체(EC)가 설립됩니다. 또한 1969년 영국의 공동체 가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하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정치적 사유로 사임하면서 1973년 영국과 덴마크, 아일랜드가 마침내 EC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어 속도를 내던 유럽통합은 1981년에는 그리스가, 1986년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가입하게되면서 EC 회원국은 총 12개국으로 확장됩니다.

 

 이후에는 1991년 유럽공동체를 ▲경제 및 화폐동맹 ▲내무 및 사법부 통합 ▲공동 외교안보 정책 등 3개 축으로 구성하자는 룩셈부르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EC는 이제 유럽연합(EU)으로 본격적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또 1995년 당시 중립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스웨덴, 핀란드가 잇따라 가입하면서 마침내 서유럽은 유럽연합을 완성하게 되죠. 한편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방황하던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이 시장경제개방 및 유럽통합계획 협조를 전제로 조건부 가입을 승인하면서 2013년 크로아티아를 마지막으로 회원국을 유럽 전역 28개국으로 확대해 오늘날까지 광범위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중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를 거쳐 2020년 유럽연합을 탈퇴했습니다.)

 EU는 아직 연합군이 창설되지 않은 상태인데요. 암살위협을 받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키예프에 남아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EU 가입에는 신청후 후보국 지위 획득, 가입협상, 이후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함에 따라 실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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